요가 강사 타라마리 페리(TaraMarie Perri). 그녀가 그저 가만히 앉아 있거나 미세하게만 움직여도 필자인 내 눈에는 마치 요가 동작처럼 보이는 것은 과연 우연일까. 브루클린의 쿠퍼공원(Cooper Park)에 앉은 그녀의 왼 다리는 오른 다리 위에 포개져 있고, 발가락은 엉덩이에 닿아 있다. 완벽하도록 곧게 뻗은 자세이지만 동시에 날렵하고 우아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감마저 느끼게 한다. 올블랙 의상에 달랑거리는 은빛 귀걸이를 착용한 페리의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가 고습도의 무더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어깨 위로 찰랑거리며 흘러 내린다. 대로변에는 화물 트럭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늘에는 비행기가 빠른 속도로 스친다. 끈적한 여름날 아침이지만, 나무가 내어주는 그늘이 잠시나마 우리에게 휴식처가 되어 준다.
4년 전 자주 갔던 동네 체육관에서 처음 페리의 요가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 그녀를 만났다. 팬데믹으로 오프라인 모임이 금지된 후 1년이 지난 지금, 다시금 대면 수업이 시작된 것이 너무 감사하다. 아침을 페리와 함께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행운처럼 느껴졌다.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녀가 몸소 보여주는 침착함, 단정한 몸가짐, 기강과 질서를 동경하게 되었다. 그녀의 수업을 통해 요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생각이 확장되었으며, 내 몸이 가진 가능성을 더욱 크게 열어두게 되었고, 말하기나 앉기 등의 간단하고 일반적인 행동에도 요가의 정신이 스며들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페리는 요가 강사라는 한 단어에 결코 다 담을 수 없는 인물이다. “관조적 예술가"라고 스스로를 정의하는 그녀는 회화, 소묘, 문예, 무용 등 그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요가를 하기 전, 그녀의 첫사랑은 무용이었다. 뉴욕대학교 티쉬스쿨(Tisch School of the Arts)에서 무용 퍼포먼스와 안무로 석사 학위를 취득한 페리는 현재 그곳의 무용과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강도 높은 훈련과 요가의 치유력을 결합하여 활용할 수 있는지 가르치고 있다.
오전 요가 수업의 영역에서 벗어나 페리와 대화할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필자로서 매우 즐거웠다. 요가와 무용의 만남, 새로운 문화적, 자본주의적 맥락 속 요가, 그에 동반되는 어려움,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지속하는 경험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무용에서 요가로 전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일단, 전환이 아니다. 많은 무용수들이 요가를 수련하며, 무용과 요가는 사실 상당히 어울린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싶다. 전문 무용가로 오래 활동했고, 요가를 처음 시작했을 때 “와! 무용을 통해 계속 찾아 헤매던 해답을 이걸로 찾게 되겠어!!”라며 환호했다. 오랜 기간 무용 전공을 하며 요가의 감각을 어릴 때부터 익혀온 것이 내가 요가를 해야한다고 깨닫게 된 토대를 제공한 것이다. 무용을 통해 사실상 요가의 감수성을 키워온 것이었고 실제로 요가를 만났을 때, 마침내 “내 자신을 이해함으로써 다른 이도 이해할 수 있겠다."고 느꼈다.
요가의 어떤 면이 자아발견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는가.
4세에 처음 무용을 시작한 이후, 미적 요건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 요가라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은 내게 마치 새로운 시작과도 같았다. 나는 요가매트에 오르는 매순간, 매번 새로이 배운다. 이러한 경험을 매일, 또 하루종일, 매년 반복하다보니 모든 것이 요가 수행의 연장이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이 대화도, 당신에게 집중하여 귀 기울이고, 최대한 명확하고 진실성있게 답변하려고 노력하는 이 순간 역시 나에게는 요가 수행이다.
몸과의 연결성이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무용과 사용하는 도구는 같지만, 주어진 가능성은 정말이지 무궁무진했다.
무용과 달리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했다는 말인가.
나는 춤을 추고 몸을 쓰는 재능을 타고 났다. 그건 확실하다. 요가는 무용의 형태가 가능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이 파고들게 해준다. 그리고 과거에 대해서도 말해준다. 요가를 통해 나의 무용 인생을 되짚어보면 흥미롭다.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 또는 힘겹고 고단했던 시절 내가 했던 선택들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다. 왜 그런 안무를 만들었었는지, 왜 그런 안무가들과 협업했었는지 말이다.
요즘 요가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 힘겨운 점은 없는가.
전통적인 스승-제자 사이의 깊은 이해와 관계가 요가 강좌의 포화로 점점 그 자취를 감추고 있다. 요가를 가르치기 전 나는 10여 년간 수련생의 위치에서 배우고 수행하였다. 그로서도 충분히 괜찮았기 때문이다. 서둘러 요가 선생이 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최근의 요가 강사 자격 과정은 뭔가 “알아야 가르칠 자격이 생긴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제대로 요가를 수련한다면, 오히려 아무것도 모를 것이고 또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도구로서의 요가를 배우고, 단순히 그 도구를 전수하기 때문에 자아발견은 온전히 제자의 몫이다. 소비되는 경험이 아니다.
요가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숙련도를 높일 수 있는 순간들이 존재하지만, 그 후 곧바로 처음부터 다시 수련하는 것을 반복한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과정이라는 것, 평생의 과제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떠한 순간에 새로이 수련이 시작된다고 느끼는가.
올해는 여러모로 나에게 굉장히 좋은 한 해이다. 사명을 받았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으며 준비된 기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잠시라도 가만히 있거나 집안에만 있는 것을 힘들어 하고, TV를 보지 않고서는 견디기 못하는 현상을 목격하는 건 실로 가슴 아픈 경험이었다. “요가 자체가 변화에 적응하고, 흐름에 나를 맡기고, 평온을 유지하는 연습인데 그럼 도대체 나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했다. 작년 한 해는 그 어떤 요가 수업보다 우리에게 더 크게 공명을 일으키는 가르침을 주었다. 어떤 이들은 이를 기회 삼아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다른 이들은 그러지 않았지만 그 또한 괜찮다.
특정 계보의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오늘날의 자본주의적인 요가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계보는 정말 중요하다. 왜냐하면 제대로 된 1대1의 스승-제자 관계에서는 양방향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시스템이고, 이런 도구들이 있으니 한 번 해봐라. 너는 어떤 질문을 할 것이냐.”라고 스승이 던지는 이 ‘질문’이 각각의 수련생을 어떻게 인도할지 결정하는데 중요한 길잡이 역할을 한다.
모든 수련생이 나아갈 길이 다르며, 어떤 이는 매우 난해한 질문을 들고 오기도 한다. 그에 반해 또 다른 이는 “발이 안 아프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라고 묻기도 한다. 질문은 다양해도 그 목적은 같다. 하지만 양방향 커뮤니케이션 없이, 그룹 강좌에서는 이러한 응답의 소통이 불가능하다.
계보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오래도록 계승되어 내려 온 뿌리깊음에서 오는 자신감이다. 그 무엇이든지 효과가 없었다면 벌써 도태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요가는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보라. 고대의 지혜를 품은 이 수행 방식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생각해 보라. 가치, 결과, 혹은 이득이 없었다면 이미 사라진지 오래일 것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스승-제자간의 관계가 중요하다. 이 관계를 통해 계보가 계승되기 때문이다.
원래 그렇게 태도나 자세가 정돈된 편이었나 아니면 수행을 통해 훈련한 것인가?
요가의 아버지 파탄잘리(Patanjali)는 그의 저서 요가수트라의 초반에 요가는 sthira-sukha, 즉 편안함과 안정감을 가지고 수행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부처님 말씀 중에 악기의 줄처럼 너무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게 수행해야 한다는 말도 있다.
이 두가지 가르침에 영향을 받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내 안에서 이 두 목소리가 만나서 조화를 이룬다. 어떨 땐 친절하고 다정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고, 무사의 예리함으로 돌격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요가를, 또 요가의 개념을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이렇게 복합적인 가르침의 목소리를 융합할 필요가 있다. 여러 스승을 모셔봤고, 나도 좋은 스승이 되려고 항상 노력하지만 역시 내게 있어서 가장 큰 스승은 요가이다. 나는 그 수행의 길에 있어서 가이드일 뿐.
에디터: 텐진 사공(Tenzin Tsagong)
사진 제공(위에서부터 순서대로)
1,2,3 소피 컬러(Sophie Kuller)
4 매튜 멀피(Matthew Murphy)/멀피메이드(MurphyMade)
5 피터 크로스비 포토그래피(Peter Crosby Photography)